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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FC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 전당 18인

by 내일은1000억 2023. 7. 21.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 전당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 전당

 

김민재 선수가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면서 이 팀에 대한 관심도 많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오늘은 FC 바이에른 뮌헨의 역사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명예의 전당에 오른 18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아마 많은 축구팬 분들께서 들어보신 분들도 있고, 모르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목차

     


    1930년대

    1930년대는 분데스리가 출범 전입니다. 바이에른 뮌헨이 첫 트로피를 들어 올릴 당시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Der 'Erste Meister'(첫번째 챔피언) 콘라트 하이트캄프 (1928 ~ 1936)

    콘라트 하이트캄프는 바이에른 뮌헨이 1931/32 시즌 첫 독일 트로피를 얻을 때의 주장이며, 2차 대전 이전의 트로피를 지켜낸 인물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1970년대

    이 때이때 독일은 전신 서독이 월드컵 우승을 1974년에 이루어냈으며, 이때 주축 선수들이 바로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이었습니다. 이때 바이에른 뮌헨 역시 현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룩합니다.

     

    Der 'Kaiser' (황제) 프란츠 베켄바워 (1964 ~ 1977)

    프란츠 베켄바워는 최고의 리베로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물입니다. 선수로서 유로와 월드컵을 우승하였으며, 감독으로서도 1990년 월드컵을 우승하며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 우승을 모두 이뤄낸 첫 번째 인물입니다. 이후 행정가로서도 돋보이는 면모를 보이며 2006년 독일 월드컵의 성공을 일궈냈으며, 우리나라의 홍명보 감독의 롤모델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Der 'Kaisers Leibwächter' (황제의 기사)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베크 (1966 ~ 1981)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베크는 황제 베켄바워의 영혼의 단짝으로서 별명도 황제의 기사로 불립니다. 포지션은 센터백이며, 베켄바워가 공격으로 뛰어나가는 경우 그의 뒤를 항상 뒷받침해 주는 든든한 파트너로서 바이에른 뮌헨의 첫 번째 전성기와 함께 했습니다. 슈바르첸베크는 바이에른 뮌헨 원클럽 맨이기도 합니다.

     

    Der 'Bomber der Nation' (폭격기) 게르트 뮐러 (1964 ~ 1979)

    게르트 뮐러는 호나우두가 2002년에 월드컵 기록을 깨기 전, 14골로서 월드컵 최다 득점자입니다. 그리고 분데스리가 최다 득점자(365골)이며, 이 기록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Die 'Katze von Anzing' (안칭의 고양이)  제프 마이어 (1962 ~ 1979)

    제프 마이어는 베켄바워 및 게르트 뮐러와 함께 바이에른 뮌헨과 서독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설의 골키퍼입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만 뛴 원클럽 맨이며, 은퇴 후에는 독일 대표팀 및 바이에른 뮌헨에서 골키퍼 코치를 역임하며 후배들을 양성하였습니다.

     

     

    Der 'Macher' (창조자) 울리 회네스 (1970 ~ 1979)

    울리 회네스는 바이에른 뮌헨의 전설적인 공격수 중 하나였으나 아쉽게도 부상으로 인하여 일찍 은퇴한 케이스입니다. 이후, 행정가로서 바이에른 뮌헨의 발전에 이바지한, 지금은 명예회장 자리에서 한 번씩 독설을 날리는 그 인물 맞습니다.

     

    Der 'Bulle' (황소) 프란츠 로트 (1966 ~ 1978)

    프란츠 로트는 저도 처음 알게된 선수입니다.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며, 66/67 시즌 유러피언 컵위너스컵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바이에른 뮌헨 역사상 첫 유럽 대항전 트로피를 안겨준 인물입니다. 다만, 국가대표로서는 4 경기만 뛰었기에 우리에겐 친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Der 'Stratege' (전략가) 파울 브라이트너 (1970 ~ 1974, 1978 ~1983)

    파울 브라이트너는 레프트백으로서 바이에른 뮌헨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탁월한 활약을 보였던 선수입니다. 전성기 시절에는 레프트백으로, 말년에는 중앙 미드필더로도 1982년 서독의 월드컵 준우승에 이바지하였습니다.


    1980년대

    이 때 바이에른 뮌헨은 딱히 잘 나가진 못하였습니다. 서독 역시 82년 월드컵 준우승 정도로 적당한 성적을 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시대에는 인물이 많진 않습니다.

     

    Der 'Visionär' (공상가)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1974 ~ 1984)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는 1980년대 서독을 대표하는 공격수입니다. 1980년 서독의 유로 우승과 1982년 월드컵 준우승의 주역이며, 1980년, 1981년 2년 연속 발롱도르 수상에 빛나는 선수입니다. 은퇴 후에도 행정가로서 뛰어난 활약을 하며 회네스와 함께 바이에른 뮌헨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Der 'Libero' (리베로)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1976 ~ 1991)

    클라우스 아우겐탈러는 원클럽맨으로 바이에른 뮌헨에서만 분데스리가 404경기를 뛴 중앙수비수입니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는 팀의 주장을 맡았으며, 분데스리가와 포칼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합니다. 다만, 유러피안 대항전과는 인연이 없었던 점이 아쉽습니다.

     


    1990년대

    이 때 역시 바이에른 뮌헨은 딱히 잘 나가진 못하였습니다. 이 당시 인물은 딱 한 명, 로타어 마테우스입니다.

     

    Der 'Leitwolf' (늑대사령관) 로타어 마테우스 (1984 ~ 1988, 1992 ~ 2000)

    로타어 마테우스는 1990년 독일의 월드컵 우승을 이끈 주장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 전에는 인테르 밀란에서 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인 위르겐 클린스만, 안드레아스 브레메와 함께 인테르를 우승으로 이끈 삼총사로도 알려졌습니다. 이후 바이에른 뮌헨으로 복귀하여 여러 차례 바이에른 뮌헨의 리그 우승을 이끈 인물입니다. 다만, 마테우스 역시 챔피언스리그와 인연이 없는데 우연찮게도 마테우스가 은퇴한 다음 해 바이에른 뮌헨이 드디어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합니다.

     


    2000년대

    25년만에 바이에른 뮌헨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합니다. 이때 주역들이 대거 뽑혔습니다.

     

     

    Der 'Chef' (지배자) 슈테판 에펜베르크 (1990 ~ 1992, 1998 ~ 2002)

    슈테판 에펜베르크는 중앙 미드필더로서 강력한 모습과 리더십을 보여줬던 바이에른 뮌헨의 주장입니다. 당시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로이 킨과 더불어 대표적인 중앙 미드필더로 꼽혔습니다. 2001년 25년 만에 바이에른 뮌헨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다만, 국가대표 경력은 일찍 끝났는데,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 경기에서 불미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것이 이유였습니다.

     

    Der 'Titelsammler' (타이틀수집가) 비센테 리자라쥐 (1997 ~ 2004, 2005 ~ 2006)

    비센테 리자라쥐는 1998년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과 2001년 바이에른 뮌헨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전설의 레프트백입니다. 오른쪽은 사뇰, 왼쪽은 리자라쥐라고 불릴 정도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던 선수입니다.

     

    Der 'Samba-Stürmer' (삼바 공격수) 지오반니 에우베르 (1997 ~ 2003)

    지오반니 에우베르는 바이에른 뮌헨의 2000년대 초반 전성기를 이끌었던 브라질 출신의 공격수입니다. 다만, 국가대표에서는 당시 호나우두, 히바우두 등에 밀려 빛을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한 동안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 득점자이기도 하였습니다.

     

    Der 'Rekordmeister' (기록챔피언) 메멧 숄 (1992 ~ 2007)

    메멧 숄은 사이드 미드필더로서 2000년대 초반 바이에른 뮌헨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다만, 독일 국가대표로서 성적은 많지 않은데 번번히 발목 잡았던 부상으로 인해 더 빛을 보지 못한 케이스에 해당합니다.

     

    Der 'Titan' (거인) 올리버 칸 (1994 ~ 2008)

    올리버 칸은 우리를 울렸던 그 올리버 칸 맞습니다. 우리에게는 2002년 우리나라와의 4강전에서 슈퍼세이브를 수차례 하며 대한민국을 꺾고 독일을 결승전에 올렸던 모습으로 많이 기억되는데요. 그는 이미 2001년에 바이에른 뮌헨의 수문장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일궈낸 주역이었습니다. 이후에도 바이에른 뮌헨의 주장으로서 암흑기를 잘 이끌어간 선수로 꼽힙니다.

     

     


    2010년대

    바이에른 뮌헨은 이 때 팀 역사상 첫 트레블을 달성합니다.

     

     

    Der 'Zuverlässige' (신뢰) 필립 람 (2002 ~ 2017)

    필립 람은 얼마 전 대한민국의 국가대표팀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에 대한 비판에 잠시 언급되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클린스만의 바이에른 뮌헨 감독 당시 람이 "전술 훈련은 없고 체력 훈련만 한다"며 비판했던 일 때문입니다. 이와 별개로 람은 라이트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모두 월드클래스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바이에른 뮌헨의 첫 트레블을 일궈낸 주장이었으며, 그의 국가대표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2014년 월드컵에서는 독일의 4번째 우승에 기여하였습니다. 은퇴 후에는 당당히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였습니다.

     

    Der 'Fußballgott' (축구의 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2002 ~ 2015)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는 필림 람과 함께 2012-2013 시즌 바이에른 뮌헨이자 독일 클럽의 첫 트레블, 그리고 2014년 독일 대표팀의 월드컵 우승을 이뤄낸 주역입니다. 포지션은 초반에는 윙어였으나 이후 중앙 미드필더로 보직 변경을 하며 월드클래스로서 실력을 과시합니다.

     

     


    앞으로의 예상

    그리고 왜 로베리(프랭크 리베리, 로벤)은 없냐고 하실 수도 있는데 이 선수들은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관계로 명예의 전당 입성은 하지 않았습니다. 몇 년 후에는 아마 두 선수도 추가될 것으로 보이며, 현역으로 뛰고 있는 현 바이에른 뮌헨의 주장 마누엘 노이어와 토마스 뮬러 역시 은퇴 후에는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바이에른 뮌헨에 합류한 김민재 역시 바이에른 뮌헨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데 주축이 되어 은퇴 후에는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길 기대해 봅니다.

     


    마무리

    이상으로 바이에른 뮌헨의 명예의 전당 18인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1930년대 콘라트 하이프캄프부터 최근의 올리버 칸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있는데요. 아마 처음 듣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바이에른 뮌헨 경기를 보실 분들께 역사 이해에 도움이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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